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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도 좋아! 밤에는 더 좋아! 어느 초여름 날의 꿈!
가까운 서울로 떠나는 궁궐 나들이…
 
김승주 기자   기사입력  2018/05/30 [22:43]
▲     © 의왕뉴스 편집실



서울에서 조선 500년의 역사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제법 많다. 그중 첫손에 꼽을 수 있는 건 조선시대 임금이 머물던 궁궐 아닐까.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4대 궁궐은 경복궁·창덕궁·창경궁 그리고 덕수궁이다. 이들 중 경복궁과 창덕궁은 철마다 ‘특별 야간 관람’이라는 이름으로 밤풍경을 공개하고 있다. 종로나 대학로, 광화문 등 서울 시내를 걸으며 지나치던 궁궐의 야간관람은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한다. 지난 겨울과 봄철 특별 야간관람의 경우 매표를 시작하자마자 마감될 정도였다. 이미 5월 봄철 야간관람은 끝났지만 궁궐의 낮과 밤 풍경을 돌아보며 다음 특별 관람을 노려보자. 분명, 밤에만 보기에는 아쉽고 또 아쉬운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니 말이다. 

                 

조선 제일의 법궁,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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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는 북악산, 남쪽으로는 청계천 물길을 품은 완벽한 배산임수 지형에 자리잡은 경복궁은 ‘하늘이 내린 큰 복’이란 뜻을 품고 있다. 경복궁 정문이 바로 그 유명한 광화문이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해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됐다 1867년 고종이 즉위한 이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됐다. 경복궁 안으로 들어서면 왕의 생활공간과 정무시설, 후원을 비롯해 왕비의 생활공간인 중궁, 세자의 동궁 등이 자리한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궐은 철거되고 근정전 등 극히 일부 건물만 남았다. 크고 작은 궁들로 채워진 경복궁은 광화문~흥례문~근정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교태전 등의 핵심공간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된다. 초행길이라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 좋다. 경회루는 왕이 외국사신을 접대하거나 공신을 위한 연회 장소였는데 시대에 따라 그 용도(?)가 다양하게 활용됐다. 왕의 정무 공간인 근정전, 왕의 침전이자 휴식 공식 휴식장소인 강녕전,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과 후원 아미산, 휴식과 풍류를 즐기던 향원정 등을 함께 돌아본다. 여인이 머물던 공간에는 꽃담으로 장식했다는 설명도 더해진다. 더위를 피해 쉬는 것도 좋지만 해설사와 경복궁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역사공부가 절로 된다. 매년 시즌별로 진행되는 특별 야간관람 관람시간은 7시부터 10시까지. 약 한달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예매가 진행되는데 시작과 동시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아쉽게도 일반인 현장판매는 진행되지 않는다. 1인당 2매까지 구매제한이 있다. 관람료는 주간과 동일하게 3000원이다. 야간 관람은 경회루까지 가능하다.(매주 화요일 정기휴무)


구한말 격동의 역사를 묵묵히 묻은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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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은 원래 성종의 형 월산대군 후손의 집이었다. 후에 선조가 임진왜란 때 행궁으로 사용했고 이후 1611년, 광해군이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던 이곳에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를 내렸다. 경운궁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897년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였다. 전성기 때에는 지금의 3배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했다. 그러다 고종 황제가 물러나면서 경운궁은 선황제의 거처로 위상이 달라졌고 이름도 덕수궁으로 바뀐다. 이후 궐내각사 일부와 환구단이 철거됐고 그 위상 또한 사라졌다. 고종 승하 후 일제의 만행은 더 집요해진다. 선원전과 증명전 일대를 매각해 궁역 자체가 줄어들었고 이후에는 아예 공원으로 조성해 일반에 공개했다. 덕수궁 일대에는 이 땅의 근현대 격동기가 구석구석 스며있다.(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일제강점기의 아픔 오롯이 품은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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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9대 임금 성종이 1483년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로 창덕궁과 경계 없이 하나의 궁궐로 사용해 둘을 합쳐 동궐이라 칭했다. 창경궁은 세종이 즉위한 1418년 고려의 남경 이궁 터에 상왕 태종을 위해 수강궁을 세운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성종이 세 명의 대비를 위해 수강궁을 확장 보완하면서 공사 도중 창경궁이라 이름을 붙였다. 초기에는 별달리 이용되지 않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창덕궁이 정궁 역할을 하면서 이궁으로 활용도가 높아진다. 물론 창경궁도 임진왜란 때 서울의 다른 궁궐들과 마찬가지로 불에 탔다. 재건된 것은 1616년 광해군 시절. 이때 재건된 명정전은 현존하는 최고 정전 건물이다. 살아나는 듯 했던 창경궁은 일제강점기를 맞아 아스라진다. 궁궐, 조선왕조의 존엄성을 말살시키려는 의도로 일제는 창경궁의 건물 대부분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해 일반에 공개한다. 1911년에는 이름마저 창경원으로 격하시킨다. 해방 이후 지금껏 본래 궁궐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자연 속으로 파고든 궁궐,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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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개국 이후 지금의 서울, 한양이 새로운 수도로 선택됐다. 곧 이어 정궁 경복궁이 세워졌고 태종(1405년)때 이궁 창덕궁이 창건된다. 경복궁이 정궁이었지만 왕들은 창덕궁을 더 선호했다고 알려진다. 아마도 창덕궁이 품은 아름다운 후원 덕분 아니었을까 싶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린 왕실의 휴식처로 사랑받아왔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의 궁궐들이 모두 불타면서 경복궁은 터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재건되지 않고 광해(1610년)때 창덕궁이 먼저 재건된다. 창덕궁은 경복궁이 재건될 때까지 270여년 동안 법궁으로 사용됐다. 창덕궁에 머무는 왕들이 늘어나면서 왕실 가족들도 늘어난다. 세분의 대비를 모시게 된 성종은 그들을 위해 창덕궁 바로 옆에 창경궁을 세운다. 지금도 창덕궁과 창경궁은 함양문을 통해 이어진다. 조선시대에는 창경궁과 경계없이 사용했으며 두 궁궐을 ‘동궐’이라 불렀다. 현존하는 조선의 궁궐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까지 더해져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됐다. 창덕궁은 크게 후원과 후원 외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일단 창덕궁의 정문이자 현존하는 궁궐 중 가장 오래된 정문인 돈화문으로 들어서면 임금의 공식 행사를 거행하던 인정전, 임금의 집무실 선정전을 지나 왕비의 생활공간이 대조전과 세장의 교육공간이던 동궁과 닿는다. 이를 지나면 후원입구다. 후원 입구와 나란히 자리한 함양문을 지나면 창경궁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더 내려가면 현종과 경빈 김씨의 애틋한 사랑을 품은 낙선재가 나온다. 해설사 동행 관람만 가능한 후원. 왕의 비밀정원 같은 후원의 아름다운 연못 부용지와 부용정, 애련지와 옥류천도 놓치지 말자. 오는 8월부터 10월까지 하반기 달빛기행이 진행될 예정이다.(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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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30 [22:43]  최종편집: ⓒ 의왕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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